Vol.197_Park Ju-min
Park Ju-min
Photography by Kim Yousung
Interviewd by Ryu Doyeon
From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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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국회의원 중 서민들과 가장 가까운 의원’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일단 외모는 확실히 그런 것 같고요(웃음). 그리고 제가 그동안 맡았던 역할도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민주당에서 을지로위원장을 직전까지 했는데요. 을지로위원회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자 등 가장 어렵고 힘든 분들의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입니다. 또 발의하고 통과시킨 법안들도 시민의 권리 향상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고요. 사실 변호사 시절에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건을 많이 맡았어요. 영화, 연극, 예술 작품, 게시물 등과 관련된 표현의 자유 사건들을 다뤘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이끌어낸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계 쪽에서는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최근에 보신 영화가 있나요?
극장은 갈 시간이 없어서 OTT로 보고 있어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아이가 있다 보니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거의 다 보고 있고, 새로 올라오는 건 대부분 챙겨봅니다. 또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도 좋아해서 자주 보고 있습니다.
의원님께서 문신사법을 오랫동안 준비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배경을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변호사 시절, 우연히 문신을 하시는 분을 의뢰인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그분이 항상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알아보니 1993년 대법원 판결로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문신을 하면 의료법 위반이 된다는 판례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눈썹문신, 입술문신, 타투 등 모든 문신 행위가 의료행위로 분류되어 처벌 대상이 됐던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의사가 문신을 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고, 이미 문신은 대중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사변론이나 헌법소원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여러 사정으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기회가 되면 반드시 제도 개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초선 때부터 문신사법을 발의했습니다. 문신을 하시는 분들이 적절한 교육과 관리 하에서 편하게 시술하실 수 있게, 보다 좀 안전한 환경에서 문신을 받게끔 만들겠다고요. 재선, 삼선을 거치면서 계속 발의했고, 결국 삼선이 된 지 10년째 되는 해에 법이 통과됐습니다.
정말 오래 걸렸네요.
네, 쉽지 않았습니다.
문신이라는 게 단순 미용 영역도 있고, 타투 문화도 있고, 여러 씬이 존재하잖아요. 그 모든 종사자분들께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뒤에서 환호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이 문화 씬에서요.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문화 하면 딱 떠오르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요즘 한국 문화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복잡하면서도 매력적인 게 특징인 것 같습니다. 전통과 현대가 동시에 존재하죠. APEC 갈라 만찬에 초청을 받아 갔는데, 문화 공연이 신라시대 이야기로 시작해서 현대 공연까지 이어졌습니다. 전통 악기 연주, 고전 무용이 나오다가… 갑자기 GD가 갓 쓰고 등장하더라고요. 몇 천 년 역사가 한 무대에서 연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한국 문화가 가진 힘이고, 저력이고,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매력들로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죠.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문화 중 가장 자랑스러운 건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세계적이어야 한다”, “글로벌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문화 영역에서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글로벌하다”라고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이 변화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얼마 전 호주 상원의장이 와서 식사를 했는데, 한국적인 음식들을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소맥, 삼겹살. 소맥 얘기하니까 눈이 반짝이셨어요. 영화에서 보고 왔다면서 소맥은 어떻게 타먹어야 황금비율인지 궁금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알려주고 그랬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미슐랭 레스토랑이나 서양에서도 익숙한 메뉴를 대접하려 했을텐데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사찰음식, 소맥, 삼겹살 같은 ‘진짜 한국적인 것’을 더 찾습니다. 그게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너무 좋은 변화인 것 같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문신사법 통과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도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사실 초선 때 처음 발의했을 때는 법안으로 성립하려면 의원 10명의 서명이 필요한데, 그 10명을 모으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문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이었어요. ‘조폭 문화 아니냐’는 시선이 여전히 강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말씀을 하시던 분들 중에도 눈썹 문신이나 반영구 시술을 하신 분들이 많았고요. 재선 이후에는 계속 설득하고 밀어붙이면서 조금씩 공론의 장이 열렸습니다. 3선이 되고 보건복지위원장이 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고, 부처와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통과될 때가 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인식이 바뀌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정말 쉽지 않았어요. 정책 공약에 넣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최근 대선에서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공약에 포함됐습니다.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드리면, 우리 대통령님도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문신 관련 단속을 꽤 강하게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대표가 되신 이후 현장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접하시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셨습니다. 마지막 무렵에는 오히려 “왜 이게 아직도 안 되느냐”고 두 번이나 말씀하실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런 인식의 전환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회적 통념을 바꾸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꾸준한 설득과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는 순간을 직접 경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어요.
저는 이 법이 단순히 직역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문화를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되네요. 예전에 유시민 작가가 국회에서 캐주얼한 복장으로 등장했던 장면이 오랫동안 회자된 것처럼, 어떤 변화는 제도 이상의 문화적 메시지를 남기거든요. 문신사법 역시 ‘하나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상징성을 가진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그런 문화적 전환의 한가운데를 걸어오신 셈인데요. 그렇다면 의원님의 청춘 시절을 대표하는 문화나 공간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1973년생인데, 제 또래에게 가장 큰 문화적 아이콘은 단연 서태지였습니다. 그 당시엔 음악뿐 아니라 패션, 공간, 소통 방식까지 완전히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죠. 압구정 같은 공간이 상징적인 장소로 떠올랐고, 카페의 ‘통유리 문화’ 같은 것도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러운 인테리어지만, 당시에는 “왜 굳이 안을 다 보이게 하느냐”는 문화적 토론이 벌어질 정도였으니까요. 좀처럼 변화가 아주 빠르다는 감각 속에서 청춘을 보냈어요.
서태지 음악이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셨나요?
데뷔 당시 혹평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청춘 문화를 뒤흔들었습니다. 특히 ‘시대유감’처럼 검열 문제와 맞닿아 있던 사례는 문화가 사회 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죠. 저는 문화의 힘이란, 억압을 강하게 할수록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줄이고, 표현의 다양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문화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화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표현은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문화는 종종 가장 예민하고 약한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소수자나 약자라고 불리는 분들의 감정과 경험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을 때, 사회 전체의 문화적 다양성이 풍성해진다고 봅니다. 타투 문화나 퀴어 문화 역시 과거에는 음지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은 점점 공론의 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권력의 개입이나 억제 시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평등법 발의 이후 반대 집회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어떠셨나요?
혐오·차별 분야 문제제기를 많이 했고, 평등법(차별금지법)을 발의했을 때 제 지역 사무실 앞에서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매주 집회가 열렸습니다. 평등법을 발의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매주 집회가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대규모로 오셔서 집회와 행진을 하셨습니다. 집회가 워낙 자주 열리다 보니, 지역 주민들께서 내용을 잘 모르신 채 “박주민이 뭔가 큰 잘못을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신 적도 있었어요. 사무실 앞에서 계속 거친 구호와 항의 목소리가 들리니까요. 그래서 제가 이곳에서 제가 발의한 평등법에 반대하는 집회가 매주 열린다는 걸 알리는 플랜카드를 하나 걸었어요. 그걸 붙여놓고 나니 그제야 많은 분들이 부패 문제가 아니라 법안에 대한 반대라는 걸 이해해주셨습니다. 길에서 의정보고서를 나눠드리며 인사할 때는 어떤 분이 제 손을 꼭 잡고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만 당신의 영혼을 구하고 싶다”며 평등법 발의를 철회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 나름의 진심이었겠지만, 누군가의 권리를 확대하자는 법안을 두고 그런 표현이 나올 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이 깊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타투 행사에 대한 공권력 개입이나 평등법을 둘러싼 집회 모두 결국은 낯선 것, 기존 질서와 다른 것을 향한 두려움과 저항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원래 기존 질서를 흔들며 확장되는 영역이고, 정치는 그런 갈등을 더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설득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시면서 공격을 많이 받으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가장 가슴 아프고 지금도 화가 나는 공격 중 하나는, 제 딸의 눈을 파버리겠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입니다. 그때 아이가 두 살, 세 살쯤이었어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정치를 하다 보면 반대하는 분들도 있고, 좋아했다가 실망하는 분들도 있고, 여러 이유로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한 번은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냈을 때였습니다. 그 법이 ‘불법 이민을 허용하는 법’이라고 왜곡되면서 이른바 좌표가 찍혔어요. 사실은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었는데요. 그날은 문자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와서 휴대폰이 켜졌다가 꺼지고, 또 켜졌다가 꺼지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 딸이 갑자기 고열이 났어요.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면서 응급실을 찾아야 했는데, 휴대폰이 계속 꺼지니까 검색도, 전화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평소에는 항의 문자 보내시는 분들께 욕을 한 적이 없는데, 그날만큼은 휴대폰을 보면서 “제발 좀…” 하면서 화를 낸 적이 있었어요. 아이 응급실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데 전화기가 안 되니까요. 그때는 정말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고민하다가 유시민 작가님께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했더니, “귀담아들을 건 다 귀담아들어야죠.”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이런 비유를 드셨습니다.
“똥을 더럽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그걸 몸에 문지릅니까?”
“아니요.”
“피하면 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많이 정리가 됐습니다. 물론 말처럼 다 되지는 않지만, 그래서 저는 댓글을 다 읽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참고할 부분은 보되, 스스로를 해치는 것까지 다 끌어안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문제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그런 걸 다 보세요. 아들 욕하는 댓글을 보시고 상처를 많이 받으십니다. 그게 또 마음이 아픕니다.
최근 예술인 지원 정책이 이슈였는데, 일부 예술인들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 좋게 보시는 분들의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다만 창작이라는 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통상적인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우리 사회를 굉장히 풍요롭게 만들죠. 저는 거기에 일정한 공공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반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원을 국가의 간섭으로 느끼는 분들도 계시죠. 국가 지원이 결국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시는 건데요. 그런 인식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문화 정책에서 오래 이야기되어 온 원칙이 있습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이 원칙이 지켜진다면, 상당수는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타투이스트도 예술인의 한 분야입니다. 문신사법이 통과된 이후 간판을 걸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시설 기준과 위생 규정을 맞춰야 합니다. 1인 작업자에게는 그 부담이 적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초기 정착 과정에서 일정 부분 지원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저는 충분히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원 방식과 조건은 매우 섬세해야겠죠.
의원님 서울시장 출마 이야기도 나오고 있기에 질문을 안드릴 수 없습니다. 서울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문제, 특히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서울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건축적으로, 외형적으로는 더 화려해지고 세련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문화 업계 종사자들, 작은 브랜드 운영자들, 1인 창작자들이 과연 지속 가능하게 활동할 수 있는 구조인가를 묻는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BTS 같은 글로벌 성공 사례는 분명 자랑스러운 성취지만, 실제로 도시의 결을 만드는 건 동네에서 자기 브랜드를 지키는 디자이너, 작은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창작자,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에요. 최근 이재명 대통령께서 ‘실패할 기회를 장려하는 사회’에 대해 말씀하신 걸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한 번 삐끗하면 쉽게 탈락시키는 문화가 강한데, 예술과 창작은 본질적으로 시행착오 속에서 나옵니다. 한 번의 실패로 퇴출되는 구조라면 문화는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문화 정책은 단순한 산업 지원 정책이 아니라 생태계를 설계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큰 나무만 키운다고 숲이 되는 게 아니라, 작은 풀과 토양이 함께 살아 있어야 숲이 유지돼요. 서울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같은 맥락이에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작업실과 소상공인이 밀려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고, 자치구 차원에서 임대료 협약이나 청년 공간 지원 정책을 하긴 하지만 규모가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해외의 경우, 예를 들어 영국이나 프랑스는 공공이 자산을 매입해 문화 공간으로 장기 보유·활용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서울도 국가나 시가 전략적으로 자산을 확보해 공공이 보유한 공간을 문화 생태계를 위해 쓰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빠르게 바뀌는 건 도시의 숙명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것까지 통째로 밀어내고, 전부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은 가장 단순한 해결책일 뿐이죠. ‘빨리 바뀌되, 깊고 강하게 남길 것은 남기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행정의 속도만이 아니라 소통의 밀도도 중요합니다.
외국인들은 서울의 뒷골목이나 전통시장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왜 자꾸 그런 공간을 없애려 하느냐는 지적도 있죠.
그런 지적을 무조건 감성적인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전쟁 이후 압축 성장을 했습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른 발전을 이뤘죠. 그런데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을 보면, 벽돌 하나 바꾸는 데도 굉장히 많은 규제를 거칩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그만큼 역사성과 맥락을 존중합니다. 서울도 이제는 속도만 강조하는 도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속도를 함께 가져가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종묘 같은 공간은 단순히 주변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큰 가치입니다. 경제적 계산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있어요. 문화는 숫자로만 계산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복잡성을 인정하고 세심하게 설계하는 태도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다음 단계를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문화적으로 성숙한 도시’란 어떤 도시입니까?
문화적으로 성숙한 도시는 문화와 삶이 서로 괴리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나로 섞여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은 빠르게 성장해왔지만, 문화와 일상이 따로 노는 지점들이 여전히 존재해요. 그런 모습은 ‘성숙’이라기보다는 ‘급성장’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죠. 문화가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냥 얹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잘 녹아들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지금의 청년 세대는 문화가 자신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사람들이 어디서 문화 얘기하고 있네. 근데 나는 내일 잘릴 수도 있고, 최저임금이고… 그런 게 내 삶에 어디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서울이 더 화려해지고 문화 담론이 풍성해져도, 정작 현실이 팍팍한 분들에겐 그 이야기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원님은 이런 간극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제가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청바지 공장에 몇 달간 들어가서 일을 한 적이 있어요. 현장이 어떤지 좀 알고 싶어서요. 같이 일하던 분 집에 놀러 가서 소주를 마시는데, 그 동네에 영화 포스터가 엄청 붙어 있었어요. 예전에 3편, 4편 동시상영 극장들 기억나세요? 아침에 들어가면 저녁에 나오는 그런 데. 그래서 “영화 보세요?” 물어봤더니, 힘들어서 못 간다는 거예요. 피곤해서. 고단한 삶을 견디느라, 문화의 기회를 누릴 여유 자체가 없는 거예요. 지금 얘기하다 보니까 그 기억이 또 나네요. 이처럼 현실이 팍팍한 분들에게 문화 이야기는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일 당장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고,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멀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일부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조건과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이든, 지역 단위의 작은 시도든, 삶과 맞닿아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겠죠.
오늘 어렵게 모신 박주민 의원님과 함께 서울 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 나눴는데요. 마지막으로 문신사법 통과 이후 2년의 유예기간이 남아 있습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시나요?
이 2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기간 동안 큰 사건, 사고가 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문제가 크게 생기면 규제가 다시 강화되거나, 최악의 경우 금지 논의까지도 나올 수 있습니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까… 평생 안정적으로 가려면, 이 2년은 정말 조심해야 해요. 저는 보건복지부 쪽에 2년 유예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달라고 이야기해둔 상태인데, 현장에서 잘 운영되고, 굳이 2년을 다 채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당기는 것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상황을 보면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화와 삶, 그리고 제도의 방향까지 깊이 있는 말씀 나눠봤습니다. 앞으로도 하실 일이 많으실 텐데요.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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