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5_uni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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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d by RYU DOYEON
From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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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용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오래 전부터 흥미롭게 지켜봐 왔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뜻깊은데요, 맵스 독자분들께 작가님에 대해 소개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철용입니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작가로서의 작업과 더불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역할도 함께 병행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시다가 최근 순수미술 작업에 집중하고 계신데, 전환의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게 딱 두가지였어요. 하나는 유도연 편집장님도 마찬가지겠지만 옷에 미쳐 있었고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림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미술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패션 브랜드를 런칭하고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들어섰어요. 지금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회기라기 보다는 패션과 그림은 같이 공존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도트, 텍스처적 접근이 인상적인데요. 이런 기법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점(dot) 자체에 대한 애정이 큰 게 첫 번째인 것 같아요. 폴카 도트 옷도 되게 자주 입는 편이고, 제 브랜드 ‘CY.Choi’에서도 꾸준히 다뤄왔어요. 점이라는 건 굉장히 단순하지만 수가 쌓이면 하나의 형상이 될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해서 두 개, 세 개, 열 개 정도의 점일 때는 어떤 형상인지 모르잖아요. 만 개, 이만 개, 더 많아지면 굉장히 디테일한 어떤 형상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죠. 저에게 점은 어떤 진동이나 떨림 같은 생명력을 가진 조형 언어라고도 생각하고요. 그런게 너무 매력적이에요.
전시 키워드 ‘유니폼’이 하나의 세계관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모티브는 무엇이었고, 궁긍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시선은 기존의 미술가들이 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미술을 했다가 패션이라는 직업을 가진 뒤로, 그러니까 패션 디자이너로 오랜 시간 활동해오면서 미술에서 가지지 못하는 패션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까 합니다만, 옷이라는 것이 특히 저에게는 단순한 피복을 넘어서 한 인간의 삶을 대변한다고 느껴요. 1890년대 광부의 워크자켓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 생전에 어떤 삶이 었는지 잘 모르더라도 그 정체성이 옷에 고스란히 묻어나죠. 그래서 유니폼이라는 어떤 주제는 그런 맥락에서 시작됐어요. 정돈되고 통제된 상징인 유니폼 위에 우유나 요구르트 같은 얼룩이 묻어나는 순간, 오히려 그 틀 안에서 균열과 창의적인 발견을 했다고 생각하고요. 거기서부터 전시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유니폼’이라는 단어를 미학적, 사회적 키워드로 확장해 해석하셨는데요. 그 단어에 주목하게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유니폼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두 가지 단어가 합성돼 있는 단어잖아요. 유니(Uni)라는 자체가 ‘하나’라는 의미고, 폼(Form)은 어떤 ‘형태’, ‘모양’인데요. 결국 우리는 주어진 어떤 것들을 하나의 형태로 묶으려는 개념을 유니폼이라고 생각
해요. 그 유니폼이란 단어를 어원적으로 따져보게 되면 우리를 통제하고 사회적인 규율이나 질서 같은 거에 가두는 것 같고, 그 안에서 통제 혹은 억압이 있을 수가 있지만 그 안에서는 분명히 자유와 외침, 또 다른 형태의 감정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이번 전시는 그런 일반적인 질서나 형식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유니폼’이라는 테마를 통해 어떤 이분법적인 해석, 긍정이냐 부정이냐 보다는 신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공명과 떨림, 그림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보셨으면 해요. 그런 것들을 그림안에 녹였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번 ‘유니폼’처럼 하나의 단어에서 파생된 사회적 현상이나 감각을 시각화해 풀어낸 작업이 인상 깊었는데요. 이러한 ‘단어의 사전화’를 가능하게 한 관찰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먼저, 유니폼 하면 가장 떠오르는 컬러는 블루였어요. 그러니까 왜 블루였냐면 제가 데님필드에서 오래 일을 하기도 했고, 초반 작업의 출발점도 광부들의 워크자켓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에 그 블루를 떨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블루 중에서도 인디고 블루에 가까운 어떤 색감들이 작업 초기에 많이 등장했죠.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어요. ‘과연 내가 유니폼을 입는 것인가? 유니폼이 나를 입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하게 됐는데 그 질문에서부터 굉장히 막연하게 흑백이 가지고 있는 농도들이 엄청 생각났어요. 유니폼이 가진 ‘질서’라는 개념을 생각했을 때, 단순한 규칙성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정하지만 일정하지 않은, 미묘하고 겹겹히 쌓인 농도 같은 걸 느꼈거든요. 질서와 무질서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런 혼재된 상태나 어떤 형태들이 있다고 말이에요. 지금의 작업들은 그런 흐름 위에 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느꼈던 직관적인 감각, 리서치 속 어떤 그냥 느낌들과 단편들이 자연스럽게 화면 위에 쌓였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작가님 뒤에 있는 작품 속 모자이크 같은 시그니처 표현은 무얼 의미하나요? 로직 퍼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도식화를 그리고 그 위에다가 원단을 표시하기 위해 원단 샘플인 스와치(Swatch;도식화 위에 부착해, 실제 소재의 질감이나 색감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데 사용)라는 걸 붙여요. 어떻게 보면 그 개념을 차용해 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패턴으로 환원시키고자 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거는 인물들, 군상들에 대한 스와치라고 첫 번째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두 번째는 저 직물의 구도가 브로큰 트윌(broken twill; 사선 무늬가 일정하지 않고 방향이 교차되도록 짜여진 트윌 조직)이라는 구도인데요. 브로큰 트윌이 뭐냐면, 트윌 자체는 평직이 위사와 경사가 직각으로 교차하는 형태라면, 트윌은 그 조직이 대각선 방향으로 올라가는 구조예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는 이 트윌 조직은 ‘브로큰 트윌’로 트윌이 깨진 형태라고 해서 파능직이라는 말을 써요. 이 파능직의 경우, 기존의 평직이나 능직처럼 단조로운 반복 구조가 아니라, 구조 자체의 변형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어요. 보통은 각도의 미세한 변화 정도밖에 못 주지만, 파능직은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무궁무진하게 짤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번 랭글러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브로큰 트윌의 다양한 변주를 접했고, 그 안에서 이런 것들이 우리가 가진 모습들과 유니폼의 변천된 모습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전체를 관통하는 조직의 구도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유니폼’이라는 단어를 전시 주제로 삼기까지 상당한 아카이빙과 리서치를 하셨다고요. 단순한 유니폼의 개념을 넘어, 미학적인 관점이나 역사적 맥락에서도 작가님만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였는데요. 패션과 미학의 연관성 혹은 그 흐름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미학이라는 건 지금도 공부 중인 영역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이번 전시 같은 경우에는 그 전 전시보다 좀 더 제로에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요. CY.Choi라는 제 브랜드라던가 아니면 다른 브랜드의 컨설팅 작업 혹은 전시를 할 때는 보통 어느 정도의 결과값을 최소한 10%든 20%든 염두에 두고 들어가요. 가설을 설정하고 접근을 하는 등의 방향성이 어느정도 존재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 모든 틀을 내려놓기로 했어요. 나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문제제기를 하고 어떤 방향으로 흐름이 이뤄질지, 어떤 예술적인 행위가 나올지에 대한 예측을 하지 않겠다고요. 이유는 단순했어요. 누가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니폼을 상징하는 10가지 단어를 붙여봤을 때 사람들은 저런 쓸데없는 행동을 왜 하냐는 말을 해요. 하지만 제가 책을 더 읽어보고, 이미지를 더 찾아보고 하면서 단어들이 하나에서 100가지가 되고, 100가지가 또 200가지가 될 때. 거기서 파생되는 굉장한 미세한 것들. 마이크로와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점차 연결성 있는 구조와 시각적 이미지들이 생겨났고, 그것이 곧 15가지의 카테고리로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이미지 수집에 더 집중했어요. 이건 결과물을 위한 게 아니라, 연구 과정으로서의 시각적 스터디였어요. 그렇게 하나 하나 쌓인 이미지들이 지금의 전시의 큰 그림, 즉 6개의 폭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이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전시의 핵심이자 출발점이 된 동시에, 이후에 색을 입히고, 내가 하는 어떤 신체적인 행위들이 개입되면서 처음 접근했던 어떤 형태의 그림과 마지막의 그림은 확연히 달라졌다는게 보여요. 이런 과정 자체가 유니폼이라는 개념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거나 단일한 결과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유와 이미지, 행동의 층위들로 구성된 복합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 대한 관람 포인트가 있다면요?
전시에는 여섯 개의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어요. 이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사회 속에서 하나의 사회적 신체로 살아가고 있고, 옷은 그 위에 입는 두 번째 피부와도 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이 전시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과연 어디에 속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죠.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치 거울을 마주한 듯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찰나가 찾아올 수도 있어요. 그런 개인적인 자각의 순간이 이번 전시에서 큰 의미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님은 현재 입고 있는 유니폼이 있나요? 그리고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요.
유니폼은 제게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경험의 연속이에요. 유치원부터 시작된 일종의 단체복 혹은 교복 문화가 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련복처럼 더 명확한 규율 속의 복장들을 입고 접했죠. 그런 흐름 속에서 제가 처음 ‘선택한’ 첫 번째 유니폼은 블루진이었던 것 같아요. 조직적인 짜임을 가진 트윌직, 염색된 블루색의 실, 시간이 지날수록 에이징되어 내 몸에 맞게 색이 빠지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일종의 ‘사회적 농도’를 가진 유니폼처럼 느껴졌죠. 그리고 두 번째 유니폼은 블랙의 엄청 큰 바지예요. CY.Choi 작업을 하면서 블랙에 되게 심취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자주 입었던 아주 큰 실루엣의 블랙 팬츠가 저만의 상징정인 복장, 그러니까 유니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유니폼은 군복이나 배달원 복장, 패스트푸드점의 근무복, 혹은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복처럼 특정 기능과 목적을 가진 복장이지만, 저는 유니폼을 어떤 규격화된 폼(Form)이라고 생각해요. 예로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서 기저귀를 차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유니폼화된 구조 안에 놓이게 되죠. 그리고 그런 무의식적인 유니폼들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과연 어느 위치에 있을까 라고 한번 되물음하는 것들이 제가 이번 전시에서 던지고자 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에게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유니폼은 무엇인가요?
그건 어떻게 보면 저에게는 큰 질문인 것 같아서, 되게 어렵네요. 다만 저에게 유니폼은 늘 사회적인 어떤 것들이 되게 큰 의미였어요. 제가 소속되어 온 집단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미술이라는 영역에서의 집단성,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선망했던 인물들이 있겠죠. 예를 들면 한때는 피카소에 깊이 빠졌고요. 어떤 시기엔 에곤실레의 거친 느낌이 젊었을 땐 좋았고요. 지금은 제가 작가이자 교수라는 사회적인 역할을 함께하고 있잖아요. 누군가한테 배우다가 이제 배움을 주는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특정적인 색깔, 특정적인 핏, 실루엣을 고집하는 것을 많이 버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예전의 유니폼은 어떤 취향이나 정체성의 표식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색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것들이 지금 제 삶의 태도와 되게 맞닿아 있는 부분이죠. 아까 유도연 편집장님이 미학에 대한 질문을 하셨을 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미학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카테고라이징하는 어떤 집단들을 유니폼화 해서 볼 수도 있잖아요. 그럼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유니폼에 속하지 않느냐고 생각해봤을 때 그 역시도 다른 방식의 유니폼이게 되는거죠. 그래서 유니폼에 대한 개념 자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흐르고, 소리처럼 떨리는 유동적인 것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계속 이동하고, 또 다른 유니폼을 입는거죠.
최근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관심이 가는 거요? 제가 이 질문을 지금 딱 받았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전시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상태라 지금 관심이 있는 건 제가 조금 한가해졌을 때 유도연 편집장님과 함께 낮에 샴페인을 한 잔 하는거요. 저의 진짜 관심이네요.
갤러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으신가요?
글쎄요. 뭐 갤러리라면 그림을 소개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관람자도 갤러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전시 같은 경우는 어떤 특정 주제를 가지고 저를 포함한 핵심 크루들, 그러니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작업이에요.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직접 보고 느껴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시 일정과 장소는요?
전시는 8월 28일 오픈을 시작으로요. 한달 정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장소는 평창동에 위치한 토탈미술관.
앞으로의 계획은 또 어떻게 되시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제가 장기 계획을 잘 못 세우는 스타일이라서 단기 계획으로 말씀드리면 이 유니폼 전시를 기반으로 그림과 미디어의 형태로 혼합 매체 작업을 11월 스페인 팔마와 베를린에서 전시를 해요.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는 다른 여러 가지 일들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한 일정인 것 같아요.
끝으로, 남기실 말이 있나요?
이번 전시는 어떻게 보면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랑 얘기한 게 2년 정도 됐어요. 그리고 그 이후 굉장히 많은 생각들, 제 기억과 감정의 잔상들을 하나씩 꺼내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자신의 유니폼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그리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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