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4_jiyoungkim
JiyongKim
Photography by KIM INYOUNG
Interviewed by PARK MIN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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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영감이 피어나는 지용킴 컬렉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그의 피스들은, 햇살과 바람 속에서 탄생한 하나의 작품처럼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다. 이토록 낭만과 개성으로 가득한 지용킴, 그는 누구이며 그의 첫 한국 플래그십 스토어는 어떤 모습일까? 차분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말을 전하던 그의 모습. 그리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한남동에 자리한 플래그십 스토어는, 도심 한가운데 생명력을 머금은 하나의 우물 같았다.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는 우물처럼, 지용킴이 보여줄 세계는 아직도 무한하다.
햇살과 바람을 이용한 천연 기법인, 선블리치. 이제는 지용킴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개성이 되었죠. 처음 이 기법을 떠올린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옷을 정말 좋아했어요.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탐구하며 빠져 지냈고, 자연스럽게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도 가지게 됐죠. 빈티지 제품이나 희귀한 옷을 수집하는 취미도 그때부터 생겼어요. 지용킴이라는 브랜드도 결국, 제가 좋아할 수 있는 독창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랑을 받기에 앞서 브랜드화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죠. 저는 개인적으로 과하거나 인위적인 문양, 프린트, 혹은 화학적인 기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선블리치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처음 구상한 아이디어예요. 바람이 불고, 그 속에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옷감의 감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 피스를 햇빛 아래에서 완성하는 데 두 달까지 걸릴 때도 있어요.
지용킴의 매력은 비단 선블리치 기법만이 아닌 것 같아요. 실루엣도 여운을 남기는데요. 패턴을 만드실 때 어디서 주로 영감을 받으실까요?
우선 제가 직접 입을 수 있는지를 기준 삼아 디자인을 시작해요. 남성분들이 실제로 입을 수 있는, 남성복의 한계 안에서 고안하려고 하죠. 그리고 입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디테일을 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옷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치 유레카를 발견하듯 그런 디테일을 눈치챌 수 있을 거예요. 또 드레이핑을 잡을 때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해요.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실루엣 안에 남다른 디테일을 숨겨놓는 방식인데, 사실 이게 결코 간단한 작업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남들과 같은 옷, 흔한 브랜드 옷을 입는 게 싫었거든요. 그런 제 성향이 자연스럽게 옷에도 반영돼서, 자연스럽지만 개성이 뚜렷한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파리의 르메르부터 루이 비통 옴므까지. 내로라 하는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 중 힘들었지만 지금의 지용킴이 되는데 밑거름이 되어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모든 경험이 저에게 밑바탕이 되어줬어요. 사실 인터뷰에서 공개하지 않은 근무 경험도 많고, 그중에는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들도 있어요. 모든 현장에서 저는 늘 경험에 목말라 있었고, 작더라도 뭔가 배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죠. 르메르에서 일할 땐 옷 자체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샘플에서 1mm 차이로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는데, 그만큼 정교한 패턴 제작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또 버질 아블로가 루이 비통의 CD였던 당시, 현장에서 가끔 마주치곤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용기 내서 제 작업을 보여줄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도 루이 비통에서 일하며 ‘패션을 더 넓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연에서 영감을 받은 오브제라든가, 꽃에서 착안해 액세서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제가 맡았던 임무 중에는 매일 아침 가장 신선한 꽃을 픽업해 오는 것도 있었죠. (웃음)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지용킴을 만들었고, 현재는 스타일링도 직접 맡고 있어요. 스타일링 역시 조금 다르게, 그리고 더 재미있게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부터 일본의 문화복장학원까지 20살 이후의 지용킴은 해외에서 많은 경험을 겪었죠. 지용킴의 10대는 어땠나요?
저는 부모님이 걱정하실 정도로 옷을 좋아하는 ‘옷덕후’였어요. 중학교 때부터 일본 옥션에서 빈티지 아이템이나 희귀한 브랜드 피스를 찾고 구매하곤 했죠. 부모님은 공부는 안하고 딴짓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셨어요.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정보 접근성이 많이 떨어졌어요. 지금은 인스타그램 팔로우 한 번만 해도 특정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책이나 잡지를 통해 깊이 있게 탐구해야만 패션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여기저기서 공부하라는 말을 들었죠. 그런데 저는 "내 꿈은 패션 디자이너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왜 전혀 관련 없는 공부를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물론 당시에 의무였던 야간자율학습도 다 끝마친 뒤, 미술학원도 따로 다녔고요. 결국 제가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제가 쇼핑하던 나라였고, 그곳에서 직접 패션을 공부해보고 싶었으니까요.
지용킴과 같이 디자이너의 깊은 감도가 묻어난 브랜드를 보고 있으면, 지용킴이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해져요. 이 옷을 만든 사람은 어떤 음악, 음식을 좋아할까?와 같은 사소한 질문들이요.
사실 요즘은 취미를 가질 여유조차 없어요. 브랜드의 시작이 졸업 패션쇼였기 때문에, 처음엔 직원도 없이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했죠. 다행히 많은 분들의 호응 덕분에 편집숍에 입점하게 됐고, 그 이후로는 정말 바쁘게 브랜드로 성장해 왔어요. 또 제가 가정을 꾸렸고, 제 아이도 태어났어요. 그래서 제 ‘플레이리스트’는 사실 4년 전쯤 멈춰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요즘엔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학교 다닐 때도 특정 아티스트를 쭉 듣기보다는, 다양한 음악을 수집하는 쪽에 가까웠어요. 장르로 따지자면, 주로 작업할 때 듣기 좋은 음악들을 위주로 들어요. 지용킴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에 오시면, 제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이 흘러 지용킴의 피스가 완성되는 것처럼, 지용킴이라는 브랜드의 미래도 궁금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희는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흘러왔고, 앞으로도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다른 지점에 도달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브랜드를 시작했을 당시 저는 학생이었고, 사실 걱정도 많았어요. 선블리치 기법은 제가 이 세상에 처음 가져온 방식인데, 누군가 제 작업을 보고 카피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죠. 실제로 특허 등록까지 알아봤을 정도예요. 선블리치뿐 아니라 디자인 자체를 모방한 제품들이 실제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요. 누군가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지용킴이 알려졌고, 브랜드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출발한 브랜드였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다 보면 앞으로도 더 많은 분의 사랑을 받게 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모든 피스가 고유하고 특별한 지용킴. 그렇다면 지용킴의 옷을 특별한 누군가가 입어주길 바라시나요?
저는 길에서 저희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할 때 가장 기뻐요. 디자이너로서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일본의 한 편집숍에서 팝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가족이 매장을 방문했어요. 가족 모두가 지용킴 옷을 입고 있었고, 특히 남편분은 제가 아주 오래전에 만든 시즌의 피스를 입고 있으셨죠. 그 순간은 정말 기분이 좋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요.
자연의 힘을 빌려 완성하는 지용킴의 피스. 모든 피스가 햇살의 서로 다른 흔적을 갖고 있죠. 불규칙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지용킴의 인생과도 닮아 있나요?
가족이 생기면서 이제는 제 삶에 큰 변화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10대부터 20대까지는 옷을 정말 독특하게, 개성 있게 입었는데요. 지금은 그런 저만의 개성과 취향을 작업을 통해 표현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작업 속에서 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다 보니, 오히려 제가 입는 옷은 점점 더 편안한 것들을 선호하게 됐어요. 아마도 그런 점이, 햇살 아래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선블리치처럼 지금의 제 삶과 작업이 닮아 있는 부분 아닐까 싶어요.
지용킴의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는 어떤 의도에서 만드셨나요?
지용킴의 전시 공간이 필요했어요. 한국에서 오프라인 전시를 꾸준히 이어오면서, 저희 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꼈거든요. 전 세계 여러 편집숍에 입점된 지용킴의 옷들은, 각 바이어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선별되어 진열되다 보니, 사실 100퍼센트의 지용킴을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저희는 서울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브랜드인 만큼, 적어도 서울에서는 지용킴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는 단순히 옷을 입어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공간에 더해, 지용킴의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끔 기획했어요.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조명과 가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구성했고, 옷처럼 가구도 변형 가능하게 설계했습니다. 앞으로 이 공간이 어떻게 변주되고, 어떤 전시를 담아낼지 저희도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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