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6_즐거운 중심 잡기

즐거운 중심 잡기

Interviewed by Yoo Youngjae

From Seoul, South Korea

-

“잘 쓸 것 같네요.”

작업실 앞에 다다라서야 손이 빈 걸 발견하고 급히 산 엽서봉투 한 묶음을 건네자 강문식은 반가움, 당황, 흥미로움이 한꼬집씩 섞인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필요한 것만 필요한 곳에 놓인 곳. 위, 아래, 옆이 다 하얀데 그 위로 옅은 살구색 빛이 묻어 있는 곳. 넓지 않아 아늑한데, 창은 넓어 몇 평의 하늘까지 쓸 수 있을 것 같은 곳.

“이런 작업실이 몇개 더 있어요. 생각이 재미있는 사람들에게 작업 공간으로 내어 주기도 하고, 누군가 찾아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돼요. ‘개미굴’처럼 곳곳에 만들어가고 있어요.”

나와 문식이 만난 이 작업실은 그가 주로 사용하는 곳. 응접실로 꾸며진 공간 너머에는 그의 작업 도구와, 다 어떻게 옮긴걸까 싶을정도로 책이 가득하다. 그 사이 공간엔 바람에 날리고 있는 종잇장 모양의 철제 조형물이 놓여 있다. 자꾸 눈길이 간다.

“이번에 작업했던 로스터리의 원두인데 괜찮더라구요.”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내린 커피를, 손으로 많이 쥐어 만든 도기 잔에 담아 건네며 문식이 말했다. 자기가 만든 것을 직접 사용하는 창작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확신, 자신, 애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그런 커피는 역시 깊고 향긋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게 뭘까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것을 같이 하는 거였어요.”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문식이 무엇을 할까 고민했을 때 나온 답이다.

“삶에서 돈도 필요하고 물건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작은 변수들을 찾는 재미가 제게는 더 큰 가치입니다. 그런 것들을 마주하기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가장 맞는 직업 같아요.”

홍길동, 손오공, 루피, 아이언 맨이 그랬던 것처럼, 문식은 재미있는 동료들을 모아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내고 있다. 어느 공모전에서 당선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하고, 강아지와 산책 중 우연히 제조자와 친분을 쌓아 작업 공정을 개선하고, 아버지의 구두방을 물려 받은 젊은 사장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져 구두방 리모델링에 나서는 등, 만화처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쌓아간다.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문식 디자인 결과물의 시각적 요소들과, 현시점 ‘스타’ 디자이너라 할만 함에도 대외 활동이 거의 없는 점에서 나는 그가 스스로 예술가라고 여기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여러가지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지만, 경계가 모호한 사람은 뭐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요?”

문식의 알아채기 어려운 옅은 미소와 냉소적인 무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눈종이처럼 명확하고 철근처럼 단단한 어조에서 그의 생각이 얼마나 확고한지 느껴졌다. 내가 멋대로 가진 편견에 불쾌했을 수도 있다 생각이 들어 사과할까 망설이는 사이 문식이 이내 원래의 담담하고 묵직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고 일합니다. 그 결과물이 예술작품처럼 보이는 경우도, 결국 수요에 따라 그런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의뢰받은 일을 잘 해결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고, 디자인 작업의 주인공은 제가 아닙니다.”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좋은 클라이언트가 필요합니다.”

문식의 ‘좋은 클라이언트’는 ‘서로의 제안을 수용하며 논의할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한 존재이다. 이미 갖추어지고 정해진 조건에서 도구로서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더 좋은 방향을 함께 찾을 수 있는 관계. 그래서 문식은 홍보하지 않는다. 반대로 더 감추어 둔다.

“중심을 잡아야 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문식이 디자이너로서 즐거움을 잃지 않고 계속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중심 잡기’다.

젊은 뮤지션들과의 작업도 중심 잡기 중 하나이다.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받아 들이고 실행 하는 것에 매우 빠른 음악인들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 오는 것에 문식은 고마움과 즐거움을 느낀다.

“정말 제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클라이언트를 받기 위해 지금처럼 다소 폐쇄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에이전시 형태를 갖게 되면 회사의 양식으로 동시에 많은 건을 진행하며 더 큰 수입을 얻을 수 있겠지만, 자본의 논리가 깊게 개입되어 자유를 잃고 매너리즘 속에 반복하는 것이 싫다고 한다. 각 의뢰를 디자이너의 한가지 스타일로 뭉뚱그리는 것이 아닌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찾아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설득이 쉽지 않아요. 에이전시처럼 일관된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데 또한 매번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죠. 그걸 위해 다양한 레퍼런스를 쌓아가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도 그저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좋아서 하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접근해요.”

문식은 외주 작업과 개인 작업, 조건과 고집, 삶과 일에서 중심을 잡고, 그 중심 잡기 자체를 즐거워한다.

“어떤 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언제 무엇을 하고, 언제 강아지와 산책 갈 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하고,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요.”

문식은 모든 곳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

.

.

You can check out more images and contents through our magazine!

Maps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