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9_Sangho Noh

네모난 노상호

Editor_Jihyun Yi

직업 혹은 작업으로 그를 소개하길 거부한다. 노상호는 둘이 살 수 있는, 크지 않지만 부엌은 넓은 집을 꿈꾸는 사람이고, 플레이스테이션을 할 수 있는 큰 티브이가 꼭 있어야 한다는 사람이며, 집에서 일하는 삶의 방식을 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 더, 창 밖엔 푸르른 나무가 보이길 바라서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두 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를, 서울숲 근처의 집을 알아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재능 있고, 유쾌하고, 다정하고, 매력적인 젊은 작가가 한국을 뜨는 게 싫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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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네모난’ 인지 이유는 묻지 않겠다. 언제, 누가 지은 이름인가.

하하. 인터뷰 하러 오는 사람들이 항상 보자 마자 1번 질문이 사라졌다고 하더라. 원래 별명이 네모였다. 날 때부터 별명이었다. 아마 어머니가 지어주신 게 아닐까. (웃음) 작업할 때 쓸 닉네임이 필요했는데, 그냥 네모는 너무 많으니까 조금 바꿔서 네모난으로 했다. 홈페이지 도메인(nemonan.net)에 쓸 때 소문자 n이 여러 번 들어가서 구성적으로도 예쁘고, 넷(net)까지 이어서 발음하면 네모나넷! 같아서 재미있다.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낼까 고민하다가 내가 지은 이름이다.

 

네모낳다고 놀리면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걸 아예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되게 심한 콤플렉스였다. 놀림을 많이 받아서 사람들 눈도 잘 못 쳐다 보던 때도 있었다. 보통 이렇게 심한 콤플렉스가 있으면 성격이 양쪽으로 갈리는데,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희화화시키는 쪽으로 갔다. 그냥 웃기는 애로 캐릭터를 잡은 거지. 그러다 보니 대학 가서 레크레이션 강사도 하고 학교 축제 사회도 보고 그랬다. (잘 풀어냈네?) 근데 부모님은 별로 안 좋아 하셨다. 너를 뭘 부족하게 키웠다고 그런 웃긴 거 하고 다니냐, 왜 주목 받고 싶어 하냐 이렇게.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더라. 그래서 네모난과 노상호를 분리시킨 것도 있다.

 

둘이 아예 분리되어 있나.

원래는 그랬다. 분리를 많이 시켜서 작업했다. 대중적인 작업을 할 때는 네모난이라는 이름을 쓰고, 좀 매니악한 작업을 하거나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소비될 때는 노상호라는 이름을 쓰는 식으로. 두 가지 자아가 있는 것 같다. 엄청 소극적이고 개인적이고 혼자 작업하고 싶어하는 나랑 되게 대외적이고 사람들과 관계 형성도 잘 하는 나. 그래서 인터뷰 하면 의외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방 안에서 그림만 그릴 것 같았는데 말도 잘 한다고. 뭔가 계정 분리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게임 계정을 두 개 만들어서 키우는 느낌이랄까. 게임 캐릭터를 하나 골라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기분? 근데 본의 아니게 혁오밴드 때문에 그게 붙어버려서, 이제는 그냥 노상호라고 한다.

 

홈페이지와 달리 책 <데일리 픽션>에는 사랑 얘기가 많다. 이것도 두 가지 자아 같은 건가.

사실 책에 있는 글은 대부분 스트레스 풀려고 썼던 글이다. 원래 <데일리 픽션> 작업은 약간 그로테스크한 동화같은 이야기가 많다. 처음엔 그냥 하던 걸 작업으로, 그것도 매일 하려니까 스트레스 받더라. 그래서 집에 와서 스트레스 푼다고 페이스북에 진짜 5분 만에 써서 올린 글들인데 오히려 그게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를 수집하다 보면 당연히 사랑 얘기가 많다. 근데 작업에는 사랑 얘기보단 동화같은 얘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사랑 얘기가 남는다. 그 남은 이야기로 별 생각 없이 쓴 건데, 열심히 지은 이야기보다 그게 더 인기를 끌어서 사실 좀 황당했다. 황당하긴 한데, 좋기도 하고. 그래서 그쪽 채널은 아예 그런 이야기로 방향을 잡았다. 여자인 자아를 만들어 두고, 걔가 말하는 것처럼 쓰는 사랑 이야기를 주로 올린다.

 

출판사에서도 페이스북을 보고 연락한 건가?

응. 혁오밴드의 영향도 있었지만.

 

확실히 요즘 SNS를 통해서 많은 일이 이뤄지는 것 같다. 작가들 중에 SNS가 가볍게 느껴져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태도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내 작업이 가볍게 소비되어도 괜찮다는 거고 그게 싫은 사람들이 있는 건데, 그것도 이해간다. 오해의 소지가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나한테 혁오밴드의 작가로 인식되는 게 전혀 문제가 없냐, 니가 갖고 있는 카테고리 중에서 하나로만 바라봐도 상관 없냐, 같은 얘기를 한다. 나도 싫을 때가 있긴 한데, 기분 나쁘기보다는 재미있어서 괜찮다. 워낙 어릴 때부터 그런 매체를 많이 쓰다 보니 그게 뭐 어때,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그냥 내 작업이 소비되는 자체가 재미있고, 사람들이 소비하는 걸 바라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운 좋게 어린 나이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 등이랑 전시를 했는데, 하다 보니 한정된 미술계가 눈에 보였다. 누가 와서 보는지, 누가 좋게 보면 어떤 전시를 할 수 있는지 이런 게 있다는 걸 느꼈다. 기분이 별로 안 좋더라. 그때 내 팬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소비할 수 있는 층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SNS를 시작했다. 그냥 좋아서 봐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하고 싶다고 다 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SNS 활용 감각이 좋은 것 같다.

친구들이 장난으로 “핫하셔!” 이런 얘기 많이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도 않다. 물론 친구들 중에서는 팔로워가 많은 편이지만, 사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4K가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지 않나. 파워 인스타그래머 찾으면 다 50K, 100K다. 혁이는 800K인데 뭐. 14K로는 먹고도 못 산다. 근데 일러스트레이터를 예로 들어 얘기하면, 내가 팔로워가 14K여도 50K인 일러스트레이터보다 정체성이 더 또렷하면 잡지에서 취재 할 때 나를 찾아 오지 않겠나. 팔로워가 뭐 200명은 아니니까. 최소 단위만 갖고 있으면 되는 것 같다. 최소 단위가 한 10K 정도인 것 같고.

 

내 팔로워가 200명인데.

하하하하하하하하 200명은 지인 아닌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법 좀 전수해 달라.

이게 저울질을 잘 해야 하는 것 같다. 작년부터 한 1년 동안 매일 그림을 올렸는데, 좋아요 수가 매일 바뀌더라. 그래서 실험을 했다. 처음에는 올리는 시간대를 바꿔 보고, 그러다 그림 색깔도 바꿔보고, 이야기 스타일도 바꿔 보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파악했다. 되게 작업 같고 재미있다. (빅데이터 분석처럼?) 응. 인스타그램을 갖고 노는 거지. 그래서 이제는 올릴 때 감이 온다. 이건 좋아요가 몇백 개 정도 나오겠네, 이렇게.

 

그렇다고 그 반응에 맞춰서 그림 그릴 건 아니지 않나.

그렇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 지 아는 게 중요한 거지, 그걸 작업에 사용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잡지에서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면 그때는 그런 요소를 쓴다. 근데 내가 내 작업 할 때는 일부러 그거랑 반대로 갈 때도 있다. 그래도 알고 안 하는 거랑 몰라서 안 하는 거랑은 다르기 때문에, 아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기도 하고.

 

나일론과의 인터뷰에서 <데일리 픽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불안함이라고 했다.

원래 학부 3, 4학년 때 엄청 불안하지 않나. 게다가 나는 판화과여서 진짜 뭐가 없었다. 도대체 선배들은 어디서 뭘 하고 사는 지도 모르겠고. (웃음) 이런 불안함에, 불안하니까 뭐라도 그리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사실 판화는 <데일리 픽션>과 정반대 성향의 작업이다. 판을 만들어야 되니까 드로잉 하나가 작품이 되기까지 몇 주씩 걸린다. 정작 드로잉은 한 장 밖에 안 하는 거지. 그거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다. 내가 한 장 한 장에 애정을 담아 작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매일, 빨리 끝내는 작업을 해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그림만 그릴 수도 있었을텐데, 이야기를 지은 이유는 뭔가.

잘 모르겠다. 원래 이야기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소설가가 꿈이었고. 어릴 때부터 만화, 소설, 영화 이런 걸 좋아해서 항상 무언가를 볼 때 화자의 자세로 보는 것 같긴 하다. 세상이 다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되게 깜짝 놀랐다. 나는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그림에 이야기를 붙여야겠다,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된 거기 때문에 내가 이야기를 왜 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림이 살짝 섬뜩한 듯한 느낌도 있다. 의도한 건가. 얼굴은 왜 이렇게 다 없나.

밝은데 그로테스크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야기도 그런 식으로 짓는 것 같다. 워낙 어릴 때부터 추리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너무 밝은 그림을 그리면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부러 그런 요소를 추가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방금 말한 얼굴을 그리지 않는 거고, 검정색으로 하늘을 칠한다거나 탁한 색을 많이 쓰는 식으로. 팔레트 보면 알겠지만, 팔레트 청소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색을 두 번 못 쓴다. 그런 식으로 탁하게 색을 죽여서 쓰는 걸 좋아한다.

 

그럼 같은 그림 여러 장 그려도 다 다르게 나오겠다.

그렇지.

 

무지개색도 많다.

묘한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묘하다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데일리 픽션>은 내 얘기 같으면서 내 얘기 같지 않은 묘한 구석이 있다.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뜯어오기 때문일 거다. 친구들 만난 다음 날에 글 올리면 왜 내 얘기 썼냐고 연락 오기도 하는데,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쓴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섞는다.

 

4년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쓰고 그렸다는 게 대단하다.

하루키의 마음 같은 게 있었다. 체계를 만들고 싶달까. 매일 하다 보면 재미있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매일 매일 그리지만, 다 인터넷에 올리진 않는다. 거르는 기준이 있나.

딱히 없다. 그린 것 중에 괜찮다, 인기 많겠다 싶은 거 올리는 거다. 웹사이트 정리할 때는 전부 다 올리긴 한다. 내가 원래 필터링이 없다. 그것도 남들이랑 좀 다른 지점인데, 그림을 망친다는 개념이 없다. 그림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무슨 구실이라도 하겠지, 하고 그냥 둔다. 왜냐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남한테도 그런 건 아니기 때문에. 그림을 팔다 보면 난 진짜 별로라고 생각한 그림을 너무 좋다고 할 때가 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더라. 나만 해도 언제는 되게 좋다고 생각했다가 시간 지나서 보면 별로라고 느낀 경우가 있으니까. 반대의 경우도 있고. 혁이랑도 이런 얘기 한 적 있다. 1집 그림이랑 2집 그림이 있는데, 2집 그릴 때는 둘 다 2집 그림이 더 좋다고 느꼈었다. 2집이 더 잘 됐고. 근데 요즘 와서 1집 그림이 더 좋다는 얘기를 계속 한다. 그때는 이게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저게 더 좋아 보이는거지. 지나면 또 바뀔지도 모른다. 그림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서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늘 같은 크기의 같은 종이에 그리나.

항상 같은 종이와 같은 팔레트를 들고 다니면서 그린다. 모듈화했다고 표현한다. 이동하면서 그리기 편하게. A4 크기의 켄트지로 정한 것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서다. 스캔하기도 편하고.

 

창작의 고통을 느낄 때가 있나.

창작의 고통이라기보다 맨날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기분일 때는 있다. 구도도 비슷하고 색깔도 비슷하고 얘기도 반복되는 것 같고. 이러다가 가끔 좋은 거 나오니까, 하고 쓰윽 넘어가긴 하는데, 그래도 그 순간에는 고통스럽고 답답하다. 가끔 좋아하는 작가 전시보고 오면 그림 다 찢어버리고 싶기도 하고. (웃음) 얼마 전에 보르헤스 책을 읽었는데, 그냥 죽어야지 싶더라. 다른 사람들의 작업물을 볼 때 창작의 고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쿨하게 잘하지? 하고 괴로워 하다가,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뭐 어쩌겠냐는 심정으로 그림 그린다. 이거의 반복이다.

 

정진수 감독과 협업한 <something to someone> 너무 좋더라.

혁이랑 진수랑 셋이 잘 논다. 영상을 진수가 찍고 내가 앨범 아트워크 하는 식으로. 진수가 해외 촬영 간 김에 개인 작업 한다고, 거기에 내 글을 쓰고 싶다길래 그러라고 했더니 그렇게 만들어 왔다. 그게 본의 아니게 포트폴리오가 되서 그걸로 일 많이 받았다더라. 물론 나한텐 아무 소득도 없고. 공짜로 줬는데 밥 한 번 안 샀다. (웃음) 그 친구 원래 꿈이 영화감독이다. 그래서 내가 영화 시놉시스를 짜주기도 한다. 대본 쓸 역량은 안 되고. 내년이나 하나 나오려나. 재미있는 친구다.

 

여름 휴가 계획은 뭔가.

하하하 이번 달 주제가 휴가인가? (웃음) 휴가는 못 갈 것 같다. 3, 4월 두 달 동안 독일이랑 헝가리로 해외 레지던시를 다녀온 데다가, 10월까지 계속 전시가 있어서 당분간은 열심히 작업해야 한다. 11월에 여자친구랑 가려고 도쿄행 비행기표를 끊어두기는 했다. 작가의 좋은 점이 비수기 때 여행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웃음) 원래 여름, 겨울 휴가 잘 안 간다. 놀기 힘들 때 일하고, 놀기 좋을 때 놀러 간다.

 

10월에 여는 개인전을 간단히 소개하면.

일단 엄청 오랜만에 하는 개인전이라, 3년 동안 한 작업을 폭발시키는 느낌으로 규모 있게 할 예정이다. 매일 그리다 보니까 그림이 천몇 점 되더라. 응암동에 있는 혁신센터라고, 100평 정도 되는 창고 같은 공간에서 한다. 어떤 방식으로 전시할 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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